몸으로 읽는 요한복음보기
영적 맹인
맹인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 받은 사람을 놓고 논쟁이 계속 됩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육안이 밝아졌을 뿐 아니라 영안도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처음에는 어떤 사람으로 말하더니 ‘선지자’, ‘하나님이 들으시는 분’, ‘하나님께 오신 분’, 결국에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로 발전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점진적으로 알아가더니 신앙고백을 합니다. 눈이 띄어지고, 귀가 들리고, 입이 열리는 경험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리새인에 의해 출교를 당합니다(35절).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을 찾아가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시고 믿고자 하는 그에게 “내가 그다”라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드러내 보이지 않으셨던 메시야 비밀을 드러내십니다. 낮고 천한 자에게 복음이 임한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예수님이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이미 심판을 받게 됩니다.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시고, 본다고 하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교만하여 안다고 하고,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보지 못하게 하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마땅히 볼 바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후에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재부터 당하는 심판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맹인이란 말이냐?”(40절)라고 분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41절)고 말씀하십니다. 곧 스스로 죄가 없다고 하니 죄를 용서해 주는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율법 외에 메시야가 필요 없습니다. 실제로 율법은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고백합니다(롬 3:20). 우리의 죄,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으로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영적인 소경입니다. 육신적으로 본다고, 종교적으로 안다고,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하면서 영적인 소경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알고 보면 육신적 장애보다 영적인 장애가 더 심각한 것입니다.
눈이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있어야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의 빛이 있어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있느냐 없느냐가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오면 빛을 받아 보게 됩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주여! 내 눈을 열어 주소서, 내 귀를 열어 주소서, 내 입을 열어 주소서!”라며 신령한 것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영안이 열려지시길 기도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귀를 열어 주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우리의 입을 열어 믿음을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맹인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 받은 사람을 놓고 논쟁이 계속 됩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은 육안이 밝아졌을 뿐 아니라 영안도 열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처음에는 어떤 사람으로 말하더니 ‘선지자’, ‘하나님이 들으시는 분’, ‘하나님께 오신 분’, 결국에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로 발전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점진적으로 알아가더니 신앙고백을 합니다. 눈이 띄어지고, 귀가 들리고, 입이 열리는 경험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리새인에 의해 출교를 당합니다(35절).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을 찾아가 “네가 인자를 믿느냐?”라고 물으시고 믿고자 하는 그에게 “내가 그다”라고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드러내 보이지 않으셨던 메시야 비밀을 드러내십니다. 낮고 천한 자에게 복음이 임한다는 말씀이 맞습니다.
예수님이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이미 심판을 받게 됩니다.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시고, 본다고 하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교만하여 안다고 하고,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보지 못하게 하십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마땅히 볼 바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후에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재부터 당하는 심판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맹인이란 말이냐?”(40절)라고 분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41절)고 말씀하십니다. 곧 스스로 죄가 없다고 하니 죄를 용서해 주는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율법 외에 메시야가 필요 없습니다. 실제로 율법은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킬 수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고백합니다(롬 3:20). 우리의 죄,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으로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영적인 소경입니다. 육신적으로 본다고, 종교적으로 안다고,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하면서 영적인 소경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알고 보면 육신적 장애보다 영적인 장애가 더 심각한 것입니다.
눈이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 있어야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의 빛이 있어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있느냐 없느냐가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오면 빛을 받아 보게 됩니다. 주님 앞에 나올 때 “주여! 내 눈을 열어 주소서, 내 귀를 열어 주소서, 내 입을 열어 주소서!”라며 신령한 것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영안이 열려지시길 기도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 주님을 보게 하시고, 우리의 귀를 열어 주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우리의 입을 열어 믿음을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소개
거룩한 습관을 키우십시오. 매일 큰 소리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주신 말씀을 몸으로 옮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본 묵상을 통해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 이미지는사진작가 David Niblack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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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묵상은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묵상에 대한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중앙성결교회 홈페이지 http://www.cchurch.org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