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읽는 요한복음보기
익명의 제자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나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체험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가 죄인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말에는 관심도 없고 잘 모르지만 내가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아니 이미 이야기했는데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어찌 다시 듣고자 합니까?” 답답해서 말하기를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어서 나에게 안내를 받으려는 것입니까?”(27절)라고 반문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알지만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는 바리새인의 이야기를 듣고 맹인이 “이상하다! 당신들이 성경 잘 안다고 하더니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니”라고 말합니다(30절). 성경이 무엇을 말합니까? 아니,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누구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까? 예수님, 아닙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모세의 제자라면서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그 행하는 일을 보고도 모르다니. 맹인이었던 사람은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을 듣는 줄을 우리가 안다”고 말합니다(31절). 곧 예수님은 경건한 분이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의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분의 말을 들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데로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똑똑한 바리새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의 말을 하나도 반박하지 못합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자가 고침 받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겠는가?”(32절)고 바리새인들을 도리어 가르칩니다. 진리는 언제나 옳은 것입니다.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복음이 들어가면 그 날부터 유식해집니다. 믿어버리면 간단한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하니 점점 어리석어 집니다.
이제 말이 딸리니 바리새인들은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34절). 불리해 지니 화를 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출신을 따지는데 이런 말하면 벌써 비겁한 것입니다. 싸움하다가 과거를 들추면 “네가 죄 가운데 나서 우리를 가르쳐!”라고 정죄합니다. 이제 변했다는데, 달라졌다는데, ‘너 옛날에’ 하고 말하는 것은 마귀의 짓입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맹인을 가리키며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그랬습니다. 죄인으로 낙인찍어서 사회에서 몰인정하게 방치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려고 한다며 소망적인 미래적인 이야기를 해 주시고 고쳐 주시는데 잘못된 종교인들은 항시 과거를 정죄합니다. 그리고 변한 것을 보면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무리 바리새인이 똑똑하고 지위가 높고, 여러 가지 많은 것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길에 서면 안 됩니다. 맹인이 아무리 형편없고 멸시받고 생활적으로는 어렵지만 그 길에 서야 합니다. 그 사람 말을 나의 말로 고백해야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결국 모세는 누구입니까? 모세는 예수님의 제자인데 바리새인들은 모세만 알았지 그 위에 계시는 예수님은 알지 못합니다. 모세가 있었다면 “나를 따른다면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다니, 나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길잡이인데”라며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여기 익명의 제자가 나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말이나 이름으로가 아니라 삶이나 행위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담대하게 믿는 바를 말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나옵니다. 맹인이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체험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그가 죄인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 말에는 관심도 없고 잘 모르지만 내가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눈을 뜨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아니 이미 이야기했는데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어찌 다시 듣고자 합니까?” 답답해서 말하기를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어서 나에게 안내를 받으려는 것입니까?”(27절)라고 반문합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알지만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는 바리새인의 이야기를 듣고 맹인이 “이상하다! 당신들이 성경 잘 안다고 하더니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했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니”라고 말합니다(30절). 성경이 무엇을 말합니까? 아니, 아브라함이나 모세가 누구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까? 예수님, 아닙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모세의 제자라면서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그 행하는 일을 보고도 모르다니. 맹인이었던 사람은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을 듣는 줄을 우리가 안다”고 말합니다(31절). 곧 예수님은 경건한 분이고, 하나님 뜻을 행하는 의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분의 말을 들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데로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똑똑한 바리새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의 말을 하나도 반박하지 못합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자가 고침 받았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겠는가?”(32절)고 바리새인들을 도리어 가르칩니다. 진리는 언제나 옳은 것입니다.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도 복음이 들어가면 그 날부터 유식해집니다. 믿어버리면 간단한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하니 점점 어리석어 집니다.
이제 말이 딸리니 바리새인들은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34절). 불리해 지니 화를 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출신을 따지는데 이런 말하면 벌써 비겁한 것입니다. 싸움하다가 과거를 들추면 “네가 죄 가운데 나서 우리를 가르쳐!”라고 정죄합니다. 이제 변했다는데, 달라졌다는데, ‘너 옛날에’ 하고 말하는 것은 마귀의 짓입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맹인을 가리키며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그랬습니다. 죄인으로 낙인찍어서 사회에서 몰인정하게 방치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려고 한다며 소망적인 미래적인 이야기를 해 주시고 고쳐 주시는데 잘못된 종교인들은 항시 과거를 정죄합니다. 그리고 변한 것을 보면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무리 바리새인이 똑똑하고 지위가 높고, 여러 가지 많은 것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길에 서면 안 됩니다. 맹인이 아무리 형편없고 멸시받고 생활적으로는 어렵지만 그 길에 서야 합니다. 그 사람 말을 나의 말로 고백해야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결국 모세는 누구입니까? 모세는 예수님의 제자인데 바리새인들은 모세만 알았지 그 위에 계시는 예수님은 알지 못합니다. 모세가 있었다면 “나를 따른다면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다니, 나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길잡이인데”라며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여기 익명의 제자가 나옵니다. 열두 제자 가운데 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말이나 이름으로가 아니라 삶이나 행위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담대하게 믿는 바를 말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소개
거룩한 습관을 키우십시오. 매일 큰 소리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주신 말씀을 몸으로 옮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본 묵상을 통해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 이미지는사진작가 David Niblack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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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묵상은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묵상에 대한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중앙성결교회 홈페이지 http://www.cchurch.org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