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읽는 요한복음보기
이런 분은 없었다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아랫사람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니 그렇게 권위 있게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이 직접 체험해 보니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겁이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냥 돌아온 아랫사람들에게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왜 잡아오지 않았느냐고 다그칩니다. 이들은 자기 주인들의 면전에서 주인들과 정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지금까지 그 분처럼 말씀하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예수를 잡아 오라는 주인의 명령은 전혀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분별력은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왔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들의 말을 듣고 “너희도 미혹되었느냐?”고 말합니다. 미혹이란 말은 좋지 않는 표현으로 마치 사이비 이단에 빠져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이미 예수님에 대한 결론을 내려놓고, 그것에 유리한 것만 꿰맞추고 있습니다. 만일 자기들의 의견에 다른 것을 내놓으면 이단자로 여깁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제일 답답합니다. 마음의 빗장을 닫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견만 옳고 자기 말만 하지,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판단하고 반대자로 여깁니다. 말을 할 뿐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수하들에게 “너희들 같이 율법도 모르는 무식한 것들이나 그를 믿지 지식층이나 신분이 있는 사람들 중에 예수를 믿는 자가 있더냐?”고 반문합니다. 즉 “너희들 말은 믿을 수 없다. 우리 같이 배운 사람들은 그런 말 안한다. 너희들은 어리석어서 그렇다”며 저주까지 합니다. 자기 아집으로 결론을 내려놓고 따르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무식하다고 정죄합니다.
이때 지도층 중에 지도층이며 지식인 중에 지식인인 산헤드린 의원 니고데모가 나섭니다. “그래 우리 율법이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동을 알기도 전에 판단부터 내리느냐? 그것이 율법을 바로 아는 사람의 태도냐?”라고 아랫사람들과 예수님을 지원하는 발언을 합니다(51절). 니고데모는 이성적이며 신사적인 사람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니고데모가 “그래 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아쉽습니다. 이런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을 FBI 신자, 드러나지 않고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니고데모에게 “너도 갈릴리에서 왔냐! 혹시 너도 한패가 아니냐?”고 말합니다(52절). 그리고 갈릴리에 대한 편견을 드러냅니다. 누가 말해도 초지일관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습니다. 아랫사람들은 무식해서 그렇고, 니고데모는 한패라서 그렇고, 바리새인들은 변하지 않고 남들만 판단합니다.
우리는 남이나 진리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대할 때 내가 알지 못했고 기대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인식론적인 환대입니다. 구약에 나그네를 접대하는 환대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보과 지평을 넓혀 주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미덕은 인식론적이 환대입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만남을 받아드리게 하옵소서. 이 일을 통하여 우리의 세계가 넓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아랫사람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니 그렇게 권위 있게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이 직접 체험해 보니 예수님을 잡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또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겁이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냥 돌아온 아랫사람들에게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왜 잡아오지 않았느냐고 다그칩니다. 이들은 자기 주인들의 면전에서 주인들과 정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지금까지 그 분처럼 말씀하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예수를 잡아 오라는 주인의 명령은 전혀 합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분별력은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왔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들의 말을 듣고 “너희도 미혹되었느냐?”고 말합니다. 미혹이란 말은 좋지 않는 표현으로 마치 사이비 이단에 빠져드는 것을 가리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은 이미 예수님에 대한 결론을 내려놓고, 그것에 유리한 것만 꿰맞추고 있습니다. 만일 자기들의 의견에 다른 것을 내놓으면 이단자로 여깁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제일 답답합니다. 마음의 빗장을 닫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견만 옳고 자기 말만 하지,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판단하고 반대자로 여깁니다. 말을 할 뿐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수하들에게 “너희들 같이 율법도 모르는 무식한 것들이나 그를 믿지 지식층이나 신분이 있는 사람들 중에 예수를 믿는 자가 있더냐?”고 반문합니다. 즉 “너희들 말은 믿을 수 없다. 우리 같이 배운 사람들은 그런 말 안한다. 너희들은 어리석어서 그렇다”며 저주까지 합니다. 자기 아집으로 결론을 내려놓고 따르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무식하다고 정죄합니다.
이때 지도층 중에 지도층이며 지식인 중에 지식인인 산헤드린 의원 니고데모가 나섭니다. “그래 우리 율법이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동을 알기도 전에 판단부터 내리느냐? 그것이 율법을 바로 아는 사람의 태도냐?”라고 아랫사람들과 예수님을 지원하는 발언을 합니다(51절). 니고데모는 이성적이며 신사적인 사람입니다. 욕심 같아서는 니고데모가 “그래 나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아쉽습니다. 이런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을 FBI 신자, 드러나지 않고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니고데모에게 “너도 갈릴리에서 왔냐! 혹시 너도 한패가 아니냐?”고 말합니다(52절). 그리고 갈릴리에 대한 편견을 드러냅니다. 누가 말해도 초지일관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습니다. 아랫사람들은 무식해서 그렇고, 니고데모는 한패라서 그렇고, 바리새인들은 변하지 않고 남들만 판단합니다.
우리는 남이나 진리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대할 때 내가 알지 못했고 기대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인식론적인 환대입니다. 구약에 나그네를 접대하는 환대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보과 지평을 넓혀 주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미덕은 인식론적이 환대입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열고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만남을 받아드리게 하옵소서. 이 일을 통하여 우리의 세계가 넓어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소개
거룩한 습관을 키우십시오. 매일 큰 소리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주신 말씀을 몸으로 옮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본 묵상을 통해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 이미지는사진작가 David Niblack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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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묵상은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묵상에 대한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중앙성결교회 홈페이지 http://www.cchurch.org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