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읽는 요한복음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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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있었고, 그 중에 제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12제자 외에도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베푸신 뜻에 관하여 영적인 의미를 말씀을 하실 때 어렵게 생각되었는지 무리들도 떠나고 제자라 불리던 사람들도 차츰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육신적인 것은 구하면서 그 보다 더 귀한 영적인 것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껍데기만 구하고 보고 먹다가 진짜를 나타내니 어렵다고 사라진 것입니다. 비본질에 매달리는 믿음은 다 이와 같습니다.
믿음의 초기 단계에는 축복이나 이적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영적인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예수님을 육적으로만 알고 신앙의 초보에만 머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육적인 그리스도인은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입니다. 영적인 말씀이 디딤돌이 되어야 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결국 12 제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나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8절).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고백에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떡을 얻어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 영생을 말씀까지 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대표성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이어 69절에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믿음이 먼저인가 앎이 먼저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줍니다. 일반 학문은 아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믿고 아는 것입니다. 신학은 믿음의 학문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알게 되며, 믿음으로 보면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씩 들어납니다. 열두 제자를 대표한 베드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열 둘 중의 하나는 이 고백에서 예외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같이 있으면서도 마귀 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파는 가룟 유다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시시 때때로 마귀의 도구가 되고 마귀를 대변합니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셨다면 가롯 유다는 마귀의 악육신입니다. 마귀는 여러 사람의 모양을 입고 시시때때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영분별이 필요합니다. “열둘 중의 하나”라고 표현한 것은 제자들 중 누구나 그렇게 될 개연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의 길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입문하여 무리를 이루지만, 12 제자로 줄어들고, 결국 열둘 중에도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믿음을 지켜서 11제자의 반열에 드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예수님을 따르되 무리들처럼 비본질적인 것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의 본질을 보고 따르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있었고, 그 중에 제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12제자 외에도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베푸신 뜻에 관하여 영적인 의미를 말씀을 하실 때 어렵게 생각되었는지 무리들도 떠나고 제자라 불리던 사람들도 차츰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육신적인 것은 구하면서 그 보다 더 귀한 영적인 것을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껍데기만 구하고 보고 먹다가 진짜를 나타내니 어렵다고 사라진 것입니다. 비본질에 매달리는 믿음은 다 이와 같습니다.
믿음의 초기 단계에는 축복이나 이적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영적인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예수님을 육적으로만 알고 신앙의 초보에만 머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육적인 그리스도인은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입니다. 영적인 말씀이 디딤돌이 되어야 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결국 12 제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나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8절).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고백에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떡을 얻어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 영생을 말씀까지 먹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대표성을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이어 69절에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믿음이 먼저인가 앎이 먼저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줍니다. 일반 학문은 아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믿고 아는 것입니다. 신학은 믿음의 학문입니다. 믿음을 가지면 알게 되며, 믿음으로 보면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씩 들어납니다. 열두 제자를 대표한 베드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열 둘 중의 하나는 이 고백에서 예외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같이 있으면서도 마귀 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파는 가룟 유다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시시 때때로 마귀의 도구가 되고 마귀를 대변합니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셨다면 가롯 유다는 마귀의 악육신입니다. 마귀는 여러 사람의 모양을 입고 시시때때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영분별이 필요합니다. “열둘 중의 하나”라고 표현한 것은 제자들 중 누구나 그렇게 될 개연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의 길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이 입문하여 무리를 이루지만, 12 제자로 줄어들고, 결국 열둘 중에도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믿음을 지켜서 11제자의 반열에 드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예수님을 따르되 무리들처럼 비본질적인 것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예수님의 본질을 보고 따르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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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습관을 키우십시오. 매일 큰 소리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주신 말씀을 몸으로 옮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본 묵상을 통해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 이미지는사진작가 David Niblack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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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묵상은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묵상에 대한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중앙성결교회 홈페이지 http://www.cchurch.org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