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읽는 요한복음예제

몸으로 읽는 요한복음

115 중 103 일째

진리가 무엇이냐

예수님을 재판하는 과정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곳을 오가면서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정정당당하고 담대하게 일관적인 태도로 임하시는 반면 고소하고 재판하는 자들은 우왕좌왕하면서 그들의 위선과 완악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행악자라고 고소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는 말하지 않고 그저 죽을 죄인이라고 결론을 내려놓고 그런 판결을 내리기 위해 분주합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다름을 그들은 그름이라고 단정을 짓는 것입니다. 다름과 그름은 분명히 다릅니다.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으면서 총독 빌라도를 이방인이라 하여 유월절 명절에 부정이 탄다고 관정에 들어가지 않고 총독 빌라도를 나오라고 합니다. 정결법을 지키기 위해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악한 일은 합니다. 조그만한 법은 지키려고 하고 더 큰 죄악은 거리낌 없이 행합니다.

빌라도와 유대인 사이에 서로 “너희 법대로 하라”는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유대의 법대로 하라고 하고, 유대인은 빌라도에게 로마법대로 처단해 달라고 합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서로 적대적 관계로서 평소에는 자기들 법대로 하게 해 달라던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두고는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상대의 법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은 죄 없는 예수에게 살인강도에게나 해당되는 사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말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문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고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의 입장이라면 살기 위해서라도 ‘유대인’에 강조점을 두어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란 말에 초점을 두고 자신이 왕이란 것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나라가 유대에 한정되지 않고,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란 점을 말씀했습니다. 살기 위해서라면 분명 부정부터 하고 긍정할 것을 이야기 했을 텐데, 예수님은 긍정부터 하고 부정을 말하였습니다. 어려움을 회피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답변입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빌라도나 고소자들은 여기에서 한 건 올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그들은 예수의 죄 패에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썼습니다. 진리에 속한 자가 아니면 이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살고자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자기답지 않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철학적인 질문 같습니다만 그 질문은 잘못되었습니다. 바른 질문은 ‘진리가 누구이냐’입니다. 진리는 소유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적 개념입니다. 진리는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은 진리와 다릅니다. 앎이 삶에 담길 때 진리가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진리요, 예수님에게 속한 자는 진리에 속한 자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압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지만 예수님 없는 진리는 무의미합니다. 그 진리를 알아서 무엇 합니까? 우리의 진리 추구가 예수님에게 도달하게 하시고 그 때에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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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소개

몸으로 읽는 요한복음

거룩한 습관을 키우십시오. 매일 큰 소리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주신 말씀을 몸으로 옮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본 묵상을 통해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 이미지는사진작가 David Niblack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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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묵상은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묵상에 대한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중앙성결교회 홈페이지 http://www.cchurch.org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