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읽는 요한복음예제
![몸으로 읽는 요한복음](/_next/image?url=https%3A%2F%2Fimageproxy.youversionapi.com%2Fhttps%3A%2F%2Fs3.amazonaws.com%2Fyvplans%2F1238%2F1280x720.jpg&w=3840&q=75)
네 남편을 불러오라.
이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달라고 요청하는데 예수님은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물을 주시는 것과 남편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것으로부터 예수님은 그 여인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목마름이 무엇으로부터 연유되었는가를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숨기고 싶었던 것,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것을 끄집어내십니다. 그 여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생수에 대한 말씀이 이 여인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여 물을 마시고 마셔도 목이 마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왜 목이 마른지 피상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외교적 수사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분 좋게 비위나 맞추고 적당히 사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 문제만은 말하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하는 그 대목부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그것을 말해야만 진실한 사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문제의 본질 즉 목마름의 원인은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언급 없이는 그 여인의 요구인 생수를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근원 치료를 해야지 증상만 완화시켜서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생수와 남편의 관계가 이해되십니까?
예수님은 그 여인이 남편이 없다고 간단하게 이야기 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피하지 말라” 과거에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은 남편도 아닌 남자와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그 여인 개인 사생활을 숫자까지 정확하게 말씀하시는군요.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깊은 침묵이 있습니다. 성서본문은 여기에서 많은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여인이 눈길로 대화를 나누신 것인지 아니면 여인은 울고 예수님은 묵묵히 지켜보고 계셨는지 모르지만 표현되지 않는 대화 그리고 치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18절 다음에는 시간이 한 참 흘렀을 것입니다. 그것은 29절에 사마리아 여인이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고 말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사이에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이 여인을 행실이 부정한 여인이라고 보았습니다.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도 다른 사람의 정부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런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남자를 바꿔나요? 아니죠. 남자들이 그 여자를 떠났겠죠.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그 여인은 지금도 연명하기 위해 다른 남자에게 붙여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보면 그 여인은 여러 사람에게 연거푸 버림을 받은 불행한 여인이지요. 이전에는 이 여인의 행실이 나쁜 사람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보았었으나 행실이 부정한 여인이 아니라 불행한 여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가부장적인 사회에다가 여자가 남자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피상적인 만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은 니고데모와의 만남보다 더 깊이 들어갑니다. 내 마음을 드러내는 만큼 내 삶은 더욱 구체적인 변화가 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게 하시고 근원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달라고 요청하는데 예수님은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십니다. 물을 주시는 것과 남편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것으로부터 예수님은 그 여인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목마름이 무엇으로부터 연유되었는가를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숨기고 싶었던 것,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던 것을 끄집어내십니다. 그 여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생수에 대한 말씀이 이 여인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여 물을 마시고 마셔도 목이 마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왜 목이 마른지 피상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외교적 수사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분 좋게 비위나 맞추고 적당히 사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 문제만은 말하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하는 그 대목부터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그것을 말해야만 진실한 사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문제의 본질 즉 목마름의 원인은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언급 없이는 그 여인의 요구인 생수를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근원 치료를 해야지 증상만 완화시켜서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생수와 남편의 관계가 이해되십니까?
예수님은 그 여인이 남편이 없다고 간단하게 이야기 하고 지나가려고 했지만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피하지 말라” 과거에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은 남편도 아닌 남자와 살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그 여인 개인 사생활을 숫자까지 정확하게 말씀하시는군요.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깊은 침묵이 있습니다. 성서본문은 여기에서 많은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여인이 눈길로 대화를 나누신 것인지 아니면 여인은 울고 예수님은 묵묵히 지켜보고 계셨는지 모르지만 표현되지 않는 대화 그리고 치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18절 다음에는 시간이 한 참 흘렀을 것입니다. 그것은 29절에 사마리아 여인이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고 말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사이에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이 여인을 행실이 부정한 여인이라고 보았습니다. 남편이 다섯 있었고 지금도 다른 사람의 정부 노릇을 하고 있으니. 그런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남자를 바꿔나요? 아니죠. 남자들이 그 여자를 떠났겠죠.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그 여인은 지금도 연명하기 위해 다른 남자에게 붙여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보면 그 여인은 여러 사람에게 연거푸 버림을 받은 불행한 여인이지요. 이전에는 이 여인의 행실이 나쁜 사람으로 선입견을 가지고 보았었으나 행실이 부정한 여인이 아니라 불행한 여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는 가부장적인 사회에다가 여자가 남자를 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피상적인 만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은 니고데모와의 만남보다 더 깊이 들어갑니다. 내 마음을 드러내는 만큼 내 삶은 더욱 구체적인 변화가 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게 하시고 근원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 소개
![몸으로 읽는 요한복음](/_next/image?url=https%3A%2F%2Fimageproxy.youversionapi.com%2Fhttps%3A%2F%2Fs3.amazonaws.com%2Fyvplans%2F1238%2F1280x720.jpg&w=3840&q=75)
거룩한 습관을 키우십시오. 매일 큰 소리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고, 주신 말씀을 몸으로 옮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본 묵상을 통해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묵상 이미지는사진작가 David Niblack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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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묵상은 중앙성결교회 한기채 목사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묵상에 대한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중앙성결교회 홈페이지 http://www.cchurch.org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