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휘장보기
하나님의 사랑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듯이 우리는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세월호의 아픔속에서, 기근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앞에서, 무시무시한 각종 자연재해 앞에서 사랑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묻게 되지요.
기독교는 이런 고통스러운 질문에 대해 깔끔한 대답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불합리와 슬픔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택한 인간들의 죄악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그 결과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일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역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다... 아들을 낳고 나서 이 말씀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더군요. 그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 이상입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가치가 지불하는 대가의 값어치에 달려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최고의 사랑인 것이지요.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을 위해 낮아지셔서 섬기기만 하셨어도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더 나아가 끔찍한 고통을 당하셨고 죽음에 이르셨습니다. 또한 그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분리라는 더 끔찍한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아… 우리는 그 고통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사랑스럽고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자격이 없는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며 스스로는 구원할 능력이 없어 절망적인 상태였던 우리들을 위해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더욱 크게 증명됩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의 세상에 들어오셔서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고통스러운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고통의 문제는 우리에게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지만, 우리는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사랑을 믿으며 고통을 견디어 냅니다.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듯이 우리는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세월호의 아픔속에서, 기근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 앞에서, 무시무시한 각종 자연재해 앞에서 사랑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묻게 되지요.
기독교는 이런 고통스러운 질문에 대해 깔끔한 대답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불합리와 슬픔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택한 인간들의 죄악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그 결과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일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역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다... 아들을 낳고 나서 이 말씀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더군요. 그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 이상입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가치가 지불하는 대가의 값어치에 달려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최고의 사랑인 것이지요.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을 위해 낮아지셔서 섬기기만 하셨어도 놀라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더 나아가 끔찍한 고통을 당하셨고 죽음에 이르셨습니다. 또한 그의 영혼은 하나님과의 분리라는 더 끔찍한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아… 우리는 그 고통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사랑스럽고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자격이 없는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며 스스로는 구원할 능력이 없어 절망적인 상태였던 우리들을 위해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더욱 크게 증명됩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통의 세상에 들어오셔서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고통스러운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고통의 문제는 우리에게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지만, 우리는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 사랑을 믿으며 고통을 견디어 냅니다.
말씀
묵상 소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본 묵상을 통해 자신의 몸을 찢어 우리에게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은혜 누리시기 바랍니다. 묵상 이미지는 사진작가 David Niblack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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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함께걷는교회 장영기 목사의 아침묵상에서 발췌, 편집했습니다. 묵상을 제공해 주신 함께걷는교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함께걷는교회 홈페이지 http://walkingwith.or.kr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