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와 함께 예수님 따르기예제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 하나님의 사역에 동역하는 피조물
예수님께서 구원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피조물의 역할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복된 기회를 주십니다.
- 나귀를 타신 예수님
현재의 겉모습이야 어찌 되었든 만왕의 왕이요 우리들의 참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다양한 것들을 동원하셨습니다. 물론 사치한 모습이 아닌 온유하고 겸손한 왕으로 입성하십니다. 당시 왕이나 장군들의 행진은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악대를 앞세우고 군대가 따르고 낙타나 코끼리 아니면 말을 타고 입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탔습니다. 나귀는 초보 운전입니다. 예수님이나 제자들의 형색도 그에 못지않게 촌스럽습니다.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 두 행렬
실재로 30년 봄 유월절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두 행렬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두 왕국의 대결처럼 보입니다. 동쪽문을 통해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초라한 행렬입니다. 서쪽문을 통해서는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본디오 빌라도의 찬란한 로마 군사행렬입니다. 기병과 보병들은 가죽 갑옷과 투구들, 병기들, 깃발들을 앞세우고, 군화소리, 북소리를 울리며 들어오고 있습니다.
- 참된 평화를 주실 왕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들은 호산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38)." 이것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사들이 부른 노래와 흡사합니다. 다만 “땅에는 평화”를 “하늘에는 평화”라고 부르고 있어서 아직 땅에는 온전한 평화가 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책망하고 만류했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그렇지 온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 찬양은 우리의 의무
하나님은 얼마든지 말 못하는 돌들을 통해서도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화석학적인 증거들이 바로 그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찬양할 기회를 은혜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직무를 유기한다면 다른 존재가 그 일을 대신하고 말 것입니다. 찬송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침묵하고 방관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시기하고 책망하는 자들입니까?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그런데 환호하는 무리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기쁨과 감사보다는 눈물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무리들의 실상 그리고 그들이 당할 일들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분별하기 못하고 사는 이스라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슬퍼하셨습니다. 그리고 AD 70년의 예루살렘 상황을 예언하셨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완악함의 결과가 바로 이렇습니다. 지난 역사의 폐허가 된 돌무더기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역에 동역하는 피조물
예수님께서 구원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피조물의 역할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복된 기회를 주십니다.
- 나귀를 타신 예수님
현재의 겉모습이야 어찌 되었든 만왕의 왕이요 우리들의 참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다양한 것들을 동원하셨습니다. 물론 사치한 모습이 아닌 온유하고 겸손한 왕으로 입성하십니다. 당시 왕이나 장군들의 행진은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악대를 앞세우고 군대가 따르고 낙타나 코끼리 아니면 말을 타고 입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탔습니다. 나귀는 초보 운전입니다. 예수님이나 제자들의 형색도 그에 못지않게 촌스럽습니다.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 두 행렬
실재로 30년 봄 유월절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두 행렬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두 왕국의 대결처럼 보입니다. 동쪽문을 통해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초라한 행렬입니다. 서쪽문을 통해서는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본디오 빌라도의 찬란한 로마 군사행렬입니다. 기병과 보병들은 가죽 갑옷과 투구들, 병기들, 깃발들을 앞세우고, 군화소리, 북소리를 울리며 들어오고 있습니다.
- 참된 평화를 주실 왕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들은 호산나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38)." 이것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사들이 부른 노래와 흡사합니다. 다만 “땅에는 평화”를 “하늘에는 평화”라고 부르고 있어서 아직 땅에는 온전한 평화가 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책망하고 만류했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그렇지 온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 찬양은 우리의 의무
하나님은 얼마든지 말 못하는 돌들을 통해서도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화석학적인 증거들이 바로 그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찬양할 기회를 은혜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직무를 유기한다면 다른 존재가 그 일을 대신하고 말 것입니다. 찬송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침묵하고 방관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시기하고 책망하는 자들입니까?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는 예수님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그런데 환호하는 무리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기쁨과 감사보다는 눈물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무리들의 실상 그리고 그들이 당할 일들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분별하기 못하고 사는 이스라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슬퍼하셨습니다. 그리고 AD 70년의 예루살렘 상황을 예언하셨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완악함의 결과가 바로 이렇습니다. 지난 역사의 폐허가 된 돌무더기가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묵상 소개
예수님과의 친밀한 사귐 가운데 그분을 더 깊이 알고, 매일 동행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오늘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은혜를 누리기 원하신다면 실제 체험과 증거에 기초하여 ‘데오빌로(사랑하는 자)’에게 전해주는 누가의 증언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와 함께하는 이 신비스런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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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앙성결교회 담임이신 한기채 목사님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교회 홈페이지 http://www.cchurch.org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