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묵상, 사도행전편 Part1보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들어가는 글
본문은 성령의 역사의 한 실례로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이를 통해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신앙의 근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사실, 소망없이 살아가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이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5절)
은이나 금은 세상에서 가장 요긴한 것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바라던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베드로에게는 지니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구제도 하였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일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모든 것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교회가 반드시 지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면 언제나 담대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5절)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에게 금과 은을 대신하여 준 것으로 이를 둘로 나눈다면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고 둘째는‘걸으라’는 것입니다. 전자는 후자의 이적(sign)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고, 후자는 전자의 결과입니다. 이를 감안할 때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진정 주고자 했던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입니다.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10절)
평소 앉은뱅이 걸인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고 매일 구걸하던 자가 일어나 걸어다니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앉은뱅이 걸인은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의 영적 상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얻고 영생에 대한 약속을 갖게 된 것은 오직 은혜이며, 가장 큰 기적입니다.
-도움 가이드
제 구 시 기도 시간에(1절)
유대인에게 하루를 24시간으로 구분하는 시간 개념이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는 없었다. 하루를 낮과 밤으로 구분했을 뿐이었다.또한 유대인은 해지는 시각을 기점으로 다음날 해지는 시각까지를 하루로 계산한다. 즉 오후 6시가 0시이며 오전 6시는 12시에 해당한다. 본절의 구 시는 오후 3시를 가리키는데,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기도 시간이다.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5절)
앉은뱅이 걸인의 관심사이다. 즉 그는 동전 몇 닢을 원할 뿐이었다. 베드로는 그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갖고 있음에도 전혀 알지 못하고 당장 현실의 욕구를 채우기에만 급급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묵상 및 질문
1. 본문을 통해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은과 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생각해 보십시오. 또 무엇을 얻을까 바라보고 있습니까?
2. 영적인 면에서 나면서 앉은뱅이요 걸인이었던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모든 이들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영적으로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3. 토머스 아퀴나스에게 교황이 “이젠 은과 금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자 “이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도 말할 수 없게 되었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병폐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를 살아가는 지금 한국의 기독교의 모습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들어가는 글
본문은 성령의 역사의 한 실례로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이를 통해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신앙의 근거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사실, 소망없이 살아가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이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5절)
은이나 금은 세상에서 가장 요긴한 것으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바라던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베드로에게는 지니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구제도 하였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일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모든 것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교회가 반드시 지녀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면 언제나 담대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5절)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에게 금과 은을 대신하여 준 것으로 이를 둘로 나눈다면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고 둘째는‘걸으라’는 것입니다. 전자는 후자의 이적(sign)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고, 후자는 전자의 결과입니다. 이를 감안할 때 베드로가 앉은뱅이에게 진정 주고자 했던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입니다.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10절)
평소 앉은뱅이 걸인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고 매일 구걸하던 자가 일어나 걸어다니는 것은 현대 의학으로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앉은뱅이 걸인은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자들의 영적 상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얻고 영생에 대한 약속을 갖게 된 것은 오직 은혜이며, 가장 큰 기적입니다.
-도움 가이드
제 구 시 기도 시간에(1절)
유대인에게 하루를 24시간으로 구분하는 시간 개념이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는 없었다. 하루를 낮과 밤으로 구분했을 뿐이었다.또한 유대인은 해지는 시각을 기점으로 다음날 해지는 시각까지를 하루로 계산한다. 즉 오후 6시가 0시이며 오전 6시는 12시에 해당한다. 본절의 구 시는 오후 3시를 가리키는데,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기도 시간이다.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5절)
앉은뱅이 걸인의 관심사이다. 즉 그는 동전 몇 닢을 원할 뿐이었다. 베드로는 그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갖고 있음에도 전혀 알지 못하고 당장 현실의 욕구를 채우기에만 급급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묵상 및 질문
1. 본문을 통해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은과 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생각해 보십시오. 또 무엇을 얻을까 바라보고 있습니까?
2. 영적인 면에서 나면서 앉은뱅이요 걸인이었던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모든 이들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나는 영적으로 걸으며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3. 토머스 아퀴나스에게 교황이 “이젠 은과 금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자 “이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도 말할 수 없게 되었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병폐일 수도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를 살아가는 지금 한국의 기독교의 모습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묵상 소개
본 글은 새오름교회의 "오름묵상"에서 발췌, 편집한 사도행전 묵상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삶에 적용 함으로써 삶의 변화와 성숙을 이루는 깊은 은혜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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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를 제공해 주신 새오름교회 김일중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묵상내용에 관해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새오름교회 홈페이지 http://www.saeoreum.org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