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와 함께 예수님 따르기보기
아버지 마음 갖기
- 네 번째 잃어버린 자, 큰 아들
여기에서 네 번째 잃은 것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큰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온전한 가정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아버지, 작은 아들, 그리고 큰 아들과의 관계회복이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기쁨은 아직 전체 공동체의 기쁨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이 기쁨의 자리에 동참하기까지 말입니다. 큰 아들은 축하하는 공동체의 풍악과 춤추는 소리, 그리고 잔치 자리에서 혼자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기뻐하며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이 말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대신 일정 거리를 두고 노하며 들어가지 않습니다. 급기야 아버지가 나와서 권면을 하는데도 아버지를 거역하며 오히려 아버지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세월 아버지를 섬겼던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마치 주인과 일군의 관계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생의 죄를 과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 자신의 형제라고 말하지 않고 “이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비교하며 자기에게는 염소새끼도 주시지 않았는데,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 아버지와 함께 하는 복
아버지는 함께 하는 것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씀합니다.
- 내가 큰 아들이라면
앞에 24절에 이 말을 듣고 이웃들이 즐거워한 것처럼 형도 즐거워했을까 의문입니다. 이 비유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비수용적인 태도를 교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네 번째 잃은 아들의 이야기는 미종결로 끝납니다. 자신의 편협함을 회개하고 잔치자리에 들어갔는지,아니면 이제는 자기가 떠날 차례라고 선언하고 아버지를 떠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큰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을까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열린 결말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듣는 우리가 자기 결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큰 아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가 더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 앞의 세 비유는 이 네 번째 이야기를 위한 예시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 네 번째 잃어버린 자, 큰 아들
여기에서 네 번째 잃은 것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큰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온전한 가정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아버지, 작은 아들, 그리고 큰 아들과의 관계회복이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기쁨은 아직 전체 공동체의 기쁨으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이 기쁨의 자리에 동참하기까지 말입니다. 큰 아들은 축하하는 공동체의 풍악과 춤추는 소리, 그리고 잔치 자리에서 혼자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기뻐하며 함께 해야 하는 사람이 말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대신 일정 거리를 두고 노하며 들어가지 않습니다. 급기야 아버지가 나와서 권면을 하는데도 아버지를 거역하며 오히려 아버지의 행위가 부당하다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세월 아버지를 섬겼던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피해의식과 자기 연민에 빠져 있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며 마치 주인과 일군의 관계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생의 죄를 과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 자신의 형제라고 말하지 않고 “이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비교하며 자기에게는 염소새끼도 주시지 않았는데, 살진 송아지를 잡았다고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 아버지와 함께 하는 복
아버지는 함께 하는 것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씀합니다.
- 내가 큰 아들이라면
앞에 24절에 이 말을 듣고 이웃들이 즐거워한 것처럼 형도 즐거워했을까 의문입니다. 이 비유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비수용적인 태도를 교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네 번째 잃은 아들의 이야기는 미종결로 끝납니다. 자신의 편협함을 회개하고 잔치자리에 들어갔는지,아니면 이제는 자기가 떠날 차례라고 선언하고 아버지를 떠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큰 아들은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을까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열린 결말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듣는 우리가 자기 결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큰 아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가 더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 앞의 세 비유는 이 네 번째 이야기를 위한 예시입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묵상 소개
예수님과의 친밀한 사귐 가운데 그분을 더 깊이 알고, 매일 동행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오늘 나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은혜를 누리기 원하신다면 실제 체험과 증거에 기초하여 ‘데오빌로(사랑하는 자)’에게 전해주는 누가의 증언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와 함께하는 이 신비스런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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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중앙성결교회 담임이신 한기채 목사님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교회 홈페이지 http://www.cchurch.org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