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이라는 우상보기
두번째로는 장소다.
일반적으로 우상은 특정 장소와 연관되어 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을 방문하신 장면이 나온다. 이 지역은 상체가 염소, 하체가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는 판(Pan)이라고 하는 신전이 있던 곳으로 유명했다. 바로 그곳에서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고, 예수님께서는 이에 따른 신앙고백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선언하셨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우상이라고 할 때 불가피하게 특정 장소를 엮어 생각한다.
다윗과 솔로몬을 거쳐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을 때 북왕국 여로보암 왕은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가는 국민들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왕상 12:27). 그러므로 고안해 낸 것이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든 것이었다.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에 죄가 되었으니”(왕상 12:28-30).
여기서 벧엘은 이스라엘 선민에게 있어서 굉장히 성스러운 도시였을 것이다. 이는 다름 아닌 야곱이 쫓겨났을 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하신 하늘의 음성을 들었던 곳이며, 하늘로 통하는 사닥다리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본 장소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창 28:18).
그러나 한때 야곱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서 그 장소가 영원토록 성스러운 곳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때 그랬다는 뜻이지 마치 그 장소 자체가 영적 에너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우상숭배가 될 수 있다.
예루살렘은 어떠한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던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은 바벨론 침략으로 인해 허왕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특정 장소를 놓고 필요 이상의 의미 부여를 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몇 년 전에 웨일즈(Wales)에 갔을 때 에반 로버츠(Evan Roberts)가 쉬고 있는 모리아 채플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 교회 장로님께서 에반 로버츠의 묘를 가리키면서 “목사님, 절대로 고개를 숙이거나 엎드려 절을 할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경고하셨다. 이유인즉,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그곳에 1904년에 일어난 부흥의 기운이 남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무엇이라도 가져가려고 한다는 것인데, 잘못되었다는 지적이었다.
특정 장소에 대한 좋은 추억을 떠올리며 회상하는 것은 좋지만, 이 역시 선을 넘어 집착으로 이어지면 이는 분명한 우상숭배다. 하나님이 한때 그 장소를 도구로 사용하신 것 뿐이지, 그곳에 그 어떤 기운도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닫고 특정 장소에 대한 숭배를 해서는 안 된다.
묵상 소개
누구에게나 노출되어 있는 '집착'(obsession)은 21세기의 새로운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람에 대한, 장소에 대한, 물품에 대한 애착을 넘어 집착하는 것은 당신을 파멸의 길로 이끈다. 김아리엘 목사님과 함께 하는 묵상을 통해 집착이라는 우상을 깔끔하게 정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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