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피하는 자Sample
정의의 기도, 용서의 기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말씀하신 소위 ‘가상칠언’을 알고 계시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말씀은 아마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라는 기도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들’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모함하던 유대 당국자들인지, 아니면 십자가형을 집행하던 로마 군인들인지…. 아무튼 예수님은 그저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이미 그들을 용서하셨다는 뜻입니다. 자신은 용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실 것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모함하고 죽이는 원수들을 용서하고,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위해 기도하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용서하는 이유가 더욱 충격적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인데 용서하지 못할 일이 무엇 있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용서를 해주기 전에 전제조건을 붙이곤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내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빈다면 그제야 용서해 줄 수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용서가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까지 용서를 유보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대신 빌어주십니다. 이러한 용서의 기도는 사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주 불편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정의를 요구하는 기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만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정의를 요구하는 기도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은 얼마든지 그럴 자격도 있으시고 그럴 능력도 있으십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하늘에서 즉시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정의’가 아니라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던 로마 백부장이 고백했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 무엇을 보고 그렇게 고백하게 되었을까요? 물론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주하거나 정의를 요구해야 할 상황인데도, 하나님께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후에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를 통해서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을 통해서 이 모습은 재생되고 반복되어야 합니다.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용서의 기도가 없었다면 복음도, 신약도, 교회도, 기독교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와 싸워서 이기는 주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 인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정의’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 속에 용서가 듬뿍 담기게 되어,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말씀하신 소위 ‘가상칠언’을 알고 계시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말씀은 아마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라는 기도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저들’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모함하던 유대 당국자들인지, 아니면 십자가형을 집행하던 로마 군인들인지…. 아무튼 예수님은 그저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이미 그들을 용서하셨다는 뜻입니다. 자신은 용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실 것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을 모함하고 죽이는 원수들을 용서하고,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위해 기도하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용서하는 이유가 더욱 충격적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인데 용서하지 못할 일이 무엇 있겠습니까?
우리는 흔히 용서를 해주기 전에 전제조건을 붙이곤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내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빈다면 그제야 용서해 줄 수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신 용서가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까지 용서를 유보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저들을 사하여 달라’고 대신 빌어주십니다. 이러한 용서의 기도는 사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주 불편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정의를 요구하는 기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만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아버지께 정의를 요구하는 기도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님은 얼마든지 그럴 자격도 있으시고 그럴 능력도 있으십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하늘에서 즉시 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정의’가 아니라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하던 로마 백부장이 고백했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 무엇을 보고 그렇게 고백하게 되었을까요? 물론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주하거나 정의를 요구해야 할 상황인데도, 하나님께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후에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를 통해서 반복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을 통해서 이 모습은 재생되고 반복되어야 합니다.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용서의 기도가 없었다면 복음도, 신약도, 교회도, 기독교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원수와 싸워서 이기는 주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방법으로 인해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정의’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 속에 용서가 듬뿍 담기게 되어,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Scripture
About this Plan
이 글은 한강중앙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유요한 목사님의 ‘목회서신’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본 묵상을 통해 우리의 참된 도움과 치유자 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은혜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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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를 제공해 주신 한강중앙교회 유요한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묵상내용에 관해 더 알고 싶은 것이 있으시면 한강중앙교회 홈페이지 http://hangang.onmam.com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