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자기 객관화보기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된 ‘자기 객관화,’ 그런데 무엇을 두고 자기 객관화라고 하는 것인가?
<인간관계론>이라는 책에 따르면, 자기 객관화란 ‘자신을 객체로 알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자기가 바라는 자신, 남들이 보는 자신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해 개방적이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니게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쉽게 말해, 자기 객관화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 확신'은 자기 객관화와 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너는 이러이러한 부분이 참 좋아”라고 하는 당신의 말에 후배가 의외로 “정말요?”라고 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는 자기 객관화가 좀 더 필요한 케이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객관화를 하는 데 있어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남의 시선이나 소견보다는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 인간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가?
첫번째 키워드는 ‘죄인’이다.
유교에서는 ‘성선설,’ 즉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로마서 5장 12절)라고 단정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타락한 아담과 하와 이래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서 태어난다.
창세기의 역사를 보면, 가인이 아벨을 살인하는 사건(창세기 4장 8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는 비극(창세기 6장 1절 - 2절), 그리고 홍수의 심판(창세기 6장 17절)에 이어서 바벨탑 사건(창세기 11장 5절 - 6절)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마음은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세기 8장 21절).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오히려 자기 객관화를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나름 괜찮은 척을 하는데, 이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과도 같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겠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요한계시록 3장 15절, 17절). 라오디게아는 자기 객관화가 가장 안 된 교회로 손꼽힌다.
우리 조국교회의 믿음의 선조들은 가슴을 치며 자신의 죄를 놓고 몸부림을 쳤다. 그래서인지 옛날 찬양 가사는 요즘 것과 사뭇 다르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아니, 성경 어디에 내가 벌레 같은 존재라는 말이 있나?
있다!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벌레 같은 이스라엘아”(이사야 41장 14절).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간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욥기 25장 6절).
한국교회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정신을 계승받아 성장한 교회인데, 이 같은 부흥운동은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선언한 길선주 장로의 회개 운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성경에 비추어볼 때 이것이 자기 객관화가 아니면 무엇인가? 우리는 외모와 장점을 넘어서서,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할 때, 진정한 자기 객관화를 이룰 수 있다. 회개 없는 구원이 없듯이,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자기 객관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우리는 죄인일 뿐이다.
성경이 우리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말씀
묵상 소개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자기 객관화,' 그러나 크리스천들에게는 자기 객관화의 기준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성경이다. 이번 말씀묵상을 통해 김아리엘 목사와 함께 신앙 안에서의 자기 객관화를 이루자!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닌 성경이 말하는 나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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