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보는 성경보기
성경을 언어(language)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즉,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언어, 즉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런데 인간은 왜 하나님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을까요?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1:10-11). 우리는 그 원인을 언어의 타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원래 하나였던 언어가 인간의 교만한 마음 때문에 혼잡하게 되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된 것이 문제의 시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11:1-9).
그 이후로 인류 역사는 다양한 언어로 발전되었는데, 지금도 국가 수는 190개인데 반해 언어 수는 6천개가 넘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데이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사실 알고 보면, 구약은 히브리어로, 그리고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된 문서입니다. 여기서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다니엘 2장 4절부터 7장 28절까지,에스라 4장 8절부터 6장 18절까지, 7장 12절부터 26절까지, 그리고 예레미야 10장 11절의 원어는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입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는 우리말 성경은 번역서라는 뜻이지요.
바벨탑 건설 이후 인간에게는 언어라는 장벽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단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답답함을 초월한 영적인 장벽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2). 결론부터 말하자면, 육의 산물인 인간의 언어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3).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
이 때문에 타락한 인간이 알아들 수 있도록 말씀이 되신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과 함께 계시다가 때가 되어 십자가를 지시고 장사된지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인데, 복음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을 재해석한 언어입니다. 따라서 혼잡해진 언어는 복음의 능력으로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순절 날 주의 성령께서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제자들이 말을 하게 되자 전 세계에서 오순절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들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행2:1-13).
이제 우리는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언어를 알아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사랑의 언어를 말함으로써 성령과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말이 통한다는것,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묵상 소개
대체로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즉, 성경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되었습니다. 언어의 장벽이 점점 무너지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 성경을 언어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세계 선교를 꿈꾸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More
이 계획을 마련해주신 아리엘김님께 감사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방문하십시오. https://mall.godpeople.com/?G=9788983508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