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라 그리하여야보기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3 중 1 일째

마가복음 11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잠시 들렀다가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로 향하는 길에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신 장면을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막 11:14). 이 말씀이 그토록 인상 깊은 말씀이었을까? 저자 마가는 그저 제자들이 이를 들었다고 증언한다. 곧이어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막 11:17)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날이 저물자 성밖으로 나오셨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에 같은 장소를 지나갈 때에 무화과 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본 베드로는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예수님께 말을 걸었다.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막 11:21). 그때 예수님께서는 둘도 없는 믿음의 원칙을 가르치셨다. 그것이 바로 23-24절에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일부 뉴에이지 영성가들은 이 성구를 악용하여 인간이 원하는 것을 믿고 말하면 무조건 이루어진다는 식의 그릇된 믿음의 능력을 소개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으라”(막 11:22)고 하심으로써 우리의 믿음은 언제까지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고 밝히셨다. 즉, 우리는 믿음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3-24). 여기서 반복되는 단어를 주목하라. ‘믿고,’ ‘믿으라’. ‘아니하면,’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대로 되리라.’ 다시 말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조건을 충족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주옥 같은 교훈이다.

나는 지금까지 받은 줄로 믿는 믿음, 즉 과거형 믿음보다 더 강력한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나는 과거형 믿음을 선포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열광 배후에는 실망이 따를 때도 있다. 왜? 말씀을 따라 받은 줄로 믿고 선언했는데 아무런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막 11:25).

아니, 믿음과 용서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25절은 마치 다른 본문에서 따온 것 같은 편집상의 오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말씀은 말씀이다. 그리고 사실 이 본문은 ‘기도’라는 주제로 통일되어 있다.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막 11:24), “서서 기도할 때에”(막 11:25). 왜 예수님께서 믿음에 관한 말씀을 하시다가 갑자기 용서라는 주제를 뜬금없이 꺼내셨을까? 여기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용서하지 않으면 이 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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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소개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예수님께서 분명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하셨는데, 믿음이 있는 우리에게 산을 옮기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당신도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과 용서와의 상관관계를 고찰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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