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손절보기

신앙과 손절

3 중 1 일째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가 ‘손절’이다. 본래 손절은 주식에서 파생된 개념이라고 한다. 즉,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해서 손해를 입더라도 내가 매수했던 금액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자손 ‘손,’ 끊을 ‘절’로 자손이 끊겼을 때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낱말을 접하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마 인연을 끊어버린다는 뜻으로 해석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다.

시시때때로 우리는 특정 대인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도 하는데, 이때 단순히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연을 끊을 때 ‘손절했다’는 말을 한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연락처 목록에서 ‘삭제,’ 혹은 메신저에서 ‘차단’을 누르는 것은 1초도 안 걸리기 때문에 어쩌면 손절이 더 쉬워졌는지도 모른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대인관계의 갈등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도 타인을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다윗은 자신의 장인어른 사울을 살해하고 싶어했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 때문에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끝까지 참았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삼상 24:6).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함부로 ‘손절’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든 대인관계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인내해야 한다. 손절하고 싶은 그 사람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이 상상을 초월하는 축복을 예비하셨다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러므로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안 좋은 감정에 몰입하기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집중하자.

신약성경으로 넘어와서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 시 마가 요한도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와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그와 갈라섰다. 이것이 손절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로써 바울은 실라와 함께, 그리고 바나바는 마가 요한과 함께 함으로써 선교활동이 재개되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 15:39-41). 그러나 세월이 흘러 바울은 자신이 너무나도 감정에 휘말려 잘못 손절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차로 투옥된 로마의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두번째로 보내는 서신서에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 주변에 손절해야 하는 이들이 한둘이 있을지도 모른다. 선을 넘어 지나치게 무례하며 인간 도리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런 사람은 지금 당장 손절하라’로 축약되는 반면에, 성경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그 너머 하나님의 섭리를 한번 더 생각하자’ 하는 것으로 마무리짓는다. 그러므로 너무 쉽게 손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라. 그러면 하나님이 알아서 정리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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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소개

신앙과 손절

요즘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는 '손절'에 관한 컨텐츠! '이런 유형의 사람은 당장 끊으라', '이런 친구는 당장 손절하라'는 세상의 메시지에 대해 크리스천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김아리엘 목사님과 함께 하는 이번 말씀묵상을 통해 신앙과 손절에 대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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