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보기
예배자만 알고 있다
예배자는 주님과의 친밀감 때문에 행복해 하는 사람이다. 주님과 동행하는 한걸음 한걸음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 나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배자는 주님만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지 상관 안 한다. 그저 주님을 예배하고 말씀의 비밀을 배우는 것을 커다란 만족으로 여긴다.
갑자기 날이 저물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가자고 제안하셨다. 제자들과 함께 탄 배에서 예수님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성경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리가 있었고, 또한 여러 배가 있었다.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가더니”(막 4:36).
갑작스럽게 큰 광풍이 이르더니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다. 제자들은 죽게 되었다고 하면서 소란을 피웠다. 그때 주님은 말씀으로 바람을 꾸짖으셨고, 바다를 잠잠케 하셨다. 위기 상황을 넘긴 직후 예수님께서는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제자들에게 왜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셨다.
나는 여기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본다.
첫째, 무리(multitude)다. 무리들은 저 멀리서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갑작스럽게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반응했으리라.
“어, 날씨가 갑자기 좋아졌네!”
둘째, 다른 배들(little other ships)이다. 분명히 다른 배들도 ‘함께’ 갔다고 했으니 같은 폭풍을 맞이한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주무시는 것도, 바람을 꾸짖으시는 것도 잘 볼 수가 없었다. 목숨이 위태로웠다가 살아난 것을 감사하면서 그들은 서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참 다행인 걸! 안 보여서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어떻게 하신 것 같아.”
셋째, 배 안(in the ship)이다. 모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전혀 어렵지 않았다. 주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도 알 수가 있었다. 광풍의 위험 수위와 바다 물결이 배에 부딪혀 배 안에 가득하게 된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제자들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사망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고 있었다. 인생에 대한 소망이 끊어질 때 주님이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분명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제자들은 날씨가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니고, 저 멀리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다고 추측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모든 것은 그들이 똑똑히 지켜보는 가운데서 벌어졌다! 이 때문에 그들의 반응은 일반 무리와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예배자는 이와 같다. 생생한 삶의 현장 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구경꾼으로 남지 않는다. 예배자는 비밀을 알고 있다. 이것은 예배자만의 특권이다. 그 때문에 더욱 더 주님을 예배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섬긴다. 더 이상 세상의 파도와 바람에 신경이 쏠리지 않는다.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주님만이 보일 뿐이다. 예배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서로 주고 받은 기쁨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값지다. 이건 예배자만이 아는 친밀감의 비밀이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묵상 소개
유례 없는 팬데믹은 현장 예배를 약화시켰다. 많은 교회들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온라인 예배의 활성화에 나섰지만, 코로나 사태로 우리나라에서만 1만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보도가 나올 만큼 우리는 힘겨운 시기를 지나왔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예배란 무엇인가? 이번 말씀묵상을 통해 예배의 변천사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봄으로써 왜 하나님께서 ‘예배자’(worshipper)에 주목하시는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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