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그늘보기

마음의 그늘

3 중 2 일째

욥기를 묵상하다 보면 눈에 띄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늘’이라는 낱말이다. 욥기 전체에 무려 12회나 표기된다(욥 3:5; 7:2; 10:21; 10:22; 12:22; 16:16; 24:17; 28:3; 34:22; 38:17; 40:21; 40:22). 잠언 6장 2절에 보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했는데, 욥의 단어구사를 통해 우리는 그의 내면세계가 얼마나 큰 어두움으로 드리워져 있는지를 직감하게 된다. 특히, 욥은 3장 5절에서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바깥 세상에 외치고 있다.

여기서 잠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마음의 그늘은 죄가 아니다.

마음의 그늘은 상처가 아니다.

마음의 그늘은 아픈 기억이 아니다.

마음의 그늘은 트라우마가 아니다.

마음의 그늘을 또 다른 말로 하면, ‘아쉬움’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내면에는 상처라고 하기에는 빈약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밝은 것과 결부되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음의 그늘이다.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계속해서 브레이크를 걸면 (그것이 타인에 의한 억압이든, 자의에 의한 자제거든) 그늘로 남는다.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유의 유교문화라는 배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예’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고, 사랑할 때 침묵하고, 아니, 말하는 것 자체가 경시되던 사회적 분위기에 익숙하다. “식사하셨어요? 아니면, 저희랑 같이 식사해요.” 이런 유형의 질문 앞에 우리는 예의상 최소한 2번은 거절해주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3번까지 말해주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알고 보면, 우리 문화는 칭찬에도 익숙한 문화가 아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칭찬해주면, 고개를 흔들며 “아니에요”라며 겸허하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르다 보니, 언젠가부터 원하고 바라는 것을 침묵하거나 거절하는 습관이 생기고, 이것이 하나의 문화로 발전하고, 언젠가부터 마음에 그늘이 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런 그늘은 더욱 더 그 색깔이 짙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최악의 경우, 마음에 그늘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다 보면, 분노 내지 질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제부터는 원하는 것을 말해도 괜찮다.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해도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아니며,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있는 그대로를 말해도 누가 비방하지 않는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

하나님은 당신이 이 땅을 그분의 자녀로 살아갈 때 마음에 그늘을 지닌 채로 지내기를 원치 않으시기에 지금 이 시간 마음의 그늘을 다루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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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소개

마음의 그늘

인구절벽으로 인한 초고령사회의 새로운 화두, 마음의 그늘!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드리워질 수 있는 마음의 그늘에 빛을 비추신다. 김아리엘 목사님과 함께 하는 말씀묵상을 통해 이제부터는 ‘그늘’이라고 할 때 더 이상 마음의 그늘을 떠올리지 않고, 주의 날개의 그늘 아래 쉼을 얻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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