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위한 기도 응답률 100%Sample
마지막으로 복음서에 등장하는 부모로서 ‘사람들’(마 19:13; 막 10:13; 눅 18:15)이 지목된다.
그들은 회당장 야이로, 가나안 여인, 또는 귀신들린 어느 한 무명의 아빠와는 달리 그다지 절박한 필요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게다가 공관복음서 기자들을 하나같이 ‘사람들’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이들이 실질적인 부모였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기기는 하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여기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녀들을 직접 데리고 온 부모들이었다는 추정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또한 누가는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눅 18:15)라고 밝힘으로써 여기서 사람들은 막연한 무리가 아니라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였다는 견해에 무게를 한층 더 싣는다.
이런 아이들에게 뜻밖의 장애물이 나타난다. 바로 제자들의 태도다.
“제자들이 꾸짖거늘”(마 19:13; 막 10:13).
“꾸짖거늘”(눅 18:15).
곧이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눅 18:16)이라고 말씀하신 후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셨다.
“그들에게 안수하시고”(마 19:15).
마가는 보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을 보이셨는지를 세 가지 동사로 묘사한다.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막 10:16).
누가는 예수님이 어린 아이들을 ‘가까이’(눅 18:16) 하셨다고 서술한다.
여기에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와 ‘자기’(눅 18:15) 자녀들을 축복해달라는 부모의 큰 무리가 등장한다. 자녀가 건강하게 장성하여 복 받아 형통한 인생을 살기를 염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예나 오늘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같은 마음인가 보다! 그런데 주님은 그 어린 자녀들을 일일이 환영해주시고 안아주시며 안수기도를 해주심으로써 또 다시 ‘자녀를 위한 기도 응답률 100%’의 영적 원리를 입증하셨다.
우리나라는 곧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전망이다. 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는 다음 세대, 즉 우리 자녀들에게 달려 있다. 사복음서의 기도의 원칙은 이렇다. 세베대의 아들의 엄마와 같이 육신의 정욕을 위해 간구하지 않는 이상, 순수한 마음으로 자녀를 위해 간구하는 기도에 하나님은 100%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던 예수님을 지켜본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이 잠시 십자가를 짐으로써 숨을 돌리시던 예수님은 그 여인들을 유심히 응시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그러므로 자녀를 위해 기도하라.
뜨겁게 눈물로서 중보하라.
마음껏 축복하라.
하나님께서 100% 응답하신다.
About this Plan
사복음서에 보면, 수많은 무리 가운데 예수님 앞에 나와 자녀를 위해 간구하는 부모들이 등장한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있는데, 부모의 기도에는 남다른 간절함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2천 년 전 예수님 앞에 나온 모든 부모들은 100% 응답을 받았다. 김아리엘 목사님과 함께 하는 이번 말씀묵상을 통해 각 에피소드를 낱낱이 살펴봄으로써 애절한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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