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의 눈보기
제 2의눈, 이성의눈
대학 시절 나는 야학이라는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한 적이 있다. 야학이란, 배움의 기회를 놓친 분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이다. 나의 경우 영어를 담당했는데, 하루는 어르신들이 음료를 주시면서 나를 포옹하려고 하기에 영문을 물으니까 “선생님, 이제는 보여요!”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뜻을 모르고 지나친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 끝에 너무나도 감격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이같이 배움은 이성의 눈을 뜨게 한다.
인간은 제 1의 눈, 육의 눈 뿐만 아니라, 제 2의 눈, 이성의 눈을 가지고 있다. 결국에는 아는 만큼, 배운 만큼, 경험한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이성의 눈을 뜨게 되면 과거에 지나쳤던 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애초에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한다(창 2:25). 그러나 뱀이 다가가자 그들은 혼란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니! 알고 보면, 교묘한 말이 아닐 수 없는 이유가 하나님은 이같이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2:16-17)고 말씀하셨다. 이어서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고 했는데, 이것 역시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경고하셨지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곧이어 교활한 뱀이 이렇게 유혹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이것이 바로 제 2의눈, 이성의 눈이다. 즉, 몰랐던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눈을 떠서는 안되고(요일 2:16), 그 대신에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주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롬 12:2).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율례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성의 눈을 열어 달라고 다음과 같이 간구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시 119:37).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시 119:82).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시 119:123).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시 119:148).
말씀
묵상 소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인간은 3가지 시각을 가지고 있다. 제 1의 눈은 육의 눈이고, 제 2의 눈은 이성의 눈이고, 제 3의 눈은 영의 눈이다. 김아리엘 목사님과 함께 하는 이번 3일 말씀묵상계획을 통해 당신의 영안이 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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