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8-15
히브리서 2:8-15 개역한글 (KRV)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찌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8-15 현대인의 성경 (KLB)
모든 것을 그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에게 복종시키는 데 있어서 복종치 않는 것이 하나도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이 그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사들보다 조금 낮아지셨다가 죽음을 당하시므로 이제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려고 하셨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이 많은 사람을 영광으로 인도하시려고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님을 고난을 통해 완전하게 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 모두 한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시지 않고 하나님께 “내가 내 형제들에게 주의 이름을 선포하고 군중 앞에 서서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하셨고 또 주님께서는 “내가 그분을 신뢰하겠다” 하셨으며 또 “나와 및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자녀들을 보라!” 하셨습니다. 자녀들은 살과 피를 가졌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성을 지니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멸망시키시고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에서 종살이하는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2:8-15 새번역 (RNKSV)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사람에게 복종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기로는, 아직도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께서 다만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셔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쓰신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끌어들이실 때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으로써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이신 아버지께 속합니다. 그러하므로 예수 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자매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주님을 찬미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또 “나는 그를 신뢰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보십시오,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