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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회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사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바로 진실한 사랑이죠. 교회에 진실한 사랑이 부재함으로서 극단적인 용납과 율법주의가 우리의 예배와 목회활동, 가정을 채우고 있습니다.
용납의 속임수는 그 것이 마치 사랑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대로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정의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사랑 또한 이런 면을 가지고 있죠.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세상의 사랑과 구분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에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사랑의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요한1서 5:2).
이는 만약 내가 인내하고 교만하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더라도, 아내를 속이거나 성적으로 문란하다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동행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진실한 사랑에는 진실과 사랑 둘 다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는 진실은 우리를 법조문으로 향하게 하고, 그러한 접근이 법률주의를 죽게 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추를 또 다른 극단으로 흔들면서 법률주의에 반응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교훈과 성경의 경고를 거부한 채 말입니다.
솔직해집시다. 우리는 연민, 자애, 친절 그리고 사랑의 부족함을 회개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만약 제가 한 시각장애인이 떨어져 죽을지도 모를 위험한 절벽으로 향하는 걸 보게 다면 사랑은 제게 그 사람이 방향을 바꾸도록 알려주라고 요구합니다!
우리 사회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조차 회개를 요구하는 진실한 사랑은 편견이 심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영원한 삶이 아닌 세속적인 삶 만을 신경쓰기 때문입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세상에서의 삶은 빛의 깜박임보다도 짧다는 걸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영생의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지금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 진실한 사랑 말입니다. 이 사랑은 죄악에 맞설 것이고 회개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오래 참고 친절하며 온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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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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